티스토리 뷰
목차
타이베이를 두세 번 다녀오고 나면 슬슬 생기는 고민이 있습니다. 예류도 가봤고, 스펀도 가봤고, 지우펀도 갔는데 이번엔 어디를 가지? 저도 그 고민 끝에 언니들과 북부 해안으로 올라갔습니다. 스먼동에서 시작해 라오메이 해변, 그리고 대만 본섬 최북단의 푸구이자오 등대까지. 버스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갔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대만을 만난 하루였습니다.
스먼동, 돌문 하나만 보고 끝날 줄 알았는데
단수이 쪽에서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다시 찾아보니 이 북해안 일대를 오가는 862번, 863번 버스가 맞는 것 같고, 지금은 716번 대만하오싱 관광버스도 스먼동과 푸구이자오를 연결하고 있어 예전보다 이동이 훨씬 편해졌더라고요.
첫 번째 목적지인 스먼동(石門洞)에 내렸을 때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으로 볼 때는 바위에 구멍 뚫린 것 하나 보고 가는 곳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직접 가보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스먼동의 돌문은 그냥 특이하게 생긴 바위인가 했는데, 파도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해식 아치(sea arch)라고 부르더라고요. 오랜 시간 파도가 바위를 깎아내면서 구멍이 생겼고, 이후 지반이 융기해서 지금처럼 해수면보다 높은 곳에 커다란 돌문이 남은 거라고 합니다. 높이가 약 10m 정도라고 하니 가까이서 보면 제법 큽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아치 자체보다 그 안쪽이 더 좋았습니다. 돌문을 지나 바다 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해안을 따라 데크 산책로가 이어지고, 하얀 다리도 있고, 정자도 있었습니다. 완전히 공원처럼 꾸며진 공간이었는데 검은 바위와 파도 소리 사이에 길이 놓여 있는 그 풍경이 꽤 근사했습니다.
이날 비가 오락가락해서 우산을 계속 들고 다녔는데, 하늘도 회색, 바다도 회색인 배경에 제 우산만 혼자 핫핑크입니다.ㅎ 당시에 여행 때마다 챙겨 다니던 우산이었는데 사진을 다시 보니 정말 잘 챙겨갔다 싶었습니다.
언니와 다리 위에서도 찍고, 산책로에서도 찍고, 정자 앞에서도 찍느라 생각보다 훨씬 오래 머물렀습니다.
주변의 검은 바위들과 바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다리와 산책로가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스먼동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 스먼동은 파도 침식으로 만들어진 해식 아치로 높이 약 10m
- 아치 안쪽으로 데크 산책로, 하얀 다리, 정자가 이어지는 공원형 구조
- 862번·863번 버스 또는 716번 대만하오싱 관광버스로 접근 가능
- 흐린 날에도 검은 바위와 하얀 구조물의 대비로 사진이 잘 나옴
라오메이 녹석조, 초록이 없어도 충분히 신기했다
스먼동을 실컷 돌아본 뒤 다시 버스를 타고 라오메이 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 내리자마자 제가 알던 해변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백사장이 아니라 바닥에 빨래판처럼 길쭉한 홈이 나란히 파인 바위들이 바다를 향해 쭉 뻗어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라오메이 그린 리프(老梅綠石槽), 즉 녹석조(綠石槽)라고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일부러 팬 것처럼 규칙적이어서 처음 보면 인공 구조물로 착각하기 딱 좋습니다. 저도 처음엔 주상절리인가 했습니다.
겨울부터 봄 사이에는 그 홈 사이사이에 녹색 해조류가 자라면서 바위 전체가 초록빛으로 물드는데, 이 풍경이 라오메이를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보통 3월~5월에는 이 바위 전체가 진짜 '녹석조'가 된다고 합니다.
제가 갔을 때는 그 시기가 아니어서 홈 사이에 녹색이 조금 남아 있는 정도였습니다. 사진에서 보던 선명한 초록빛 풍경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바위의 생김새 자체를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저는 나름대로 만족했습니다. 파도가 어떻게 이렇게 규칙적인 모양을 만들어냈을까 신기해서 언니와 둘이 바위 사이를 한참 돌아다녔습니다.
날씨가 흐려서 화려한 사진은 아니었지만, 햇볕이 강하지 않으니 오히려 오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날이 꼭 있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사진이 예쁘고 흐리면 걷기가 편합니다^^;

라오메이에서 푸구이자오 등대까지 걸어 올라간 길
라오메이 해변을 보고 나서 푸구이자오 등대(富貴角燈塔)까지 해안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습니다. 이 길이 정말 좋았던 구간입니다.
바다를 옆에 두고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인데, 길 자체가 푸구이자오 공원의 해안 트레킹 코스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라오메이 일대에서 출발해 등대까지, 그리고 인근 푸지 어항까지 연결되는 구조라 가기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고 계속 풍경이 바뀝니다.
걷는 내내 바다가 보이고, 풍경이 조금씩 바뀌면서 멈추고 싶은 순간이 계속 생겼습니다. 비가 조금 내렸지만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 걸으니 별로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등대 가까이 다가갈수록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푸구이자오 등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냥 줄무늬 등대다, 예쁘다 정도였는데 이번에 다시 찾아보고서야 이곳이 대만 본섬 최북단 지점에 세워진 등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푸구이자오 등대는 1897년에 처음 완공됐고, 현재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1962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가 있는 구조물인데 저는 그냥 사진이나 잔뜩 찍고 왔습니다. 등대 앞에서도 찍고, 조금 내려와서 등대를 배경으로 또 찍고, 바다가 보이면 또 멈추고. 언니와 둘이서 그렇게 한참을 보냈습니다.
타이베이를 두 번 이상 갔다면 이 북해안 코스를 추천합니다
처음 대만을 간다면 중정기념당, 예류, 스펀, 지우펀을 가는 일정이 먼저일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다녔고, 그 코스가 왜 유명한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만을 몇 번 다녀오고 나니 이런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북해안을 다녀오면서 제가 깨달은 건, 타이베이를 몇 번 가도 아직 못 본 대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버스 하나 타고 조금 더 올라갔을 뿐인데 전혀 다른 지형과 분위기가 펼쳐졌습니다. 해식 아치를 지나 바다 옆을 걷고, 화산 침식으로 만들어진 석조 지형을 보고, 해안 트레킹 코스를 따라 등대까지 올라가는 하루. 시내를 돌아다닐 때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여행이었습니다.
특히 스먼동은 제가 가장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곳입니다. 해식 아치 하나 보고 끝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산책로와 다리, 정자가 갖춰진 공간 전체가 볼거리입니다. 사람이 많지 않고 느긋하게 돌아다닐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라오메이는 계절을 잘 맞추면 녹석조의 초록빛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시기를 놓쳤지만 다음에 간다면 3월에서 5월 사이를 노려볼 생각입니다. 물론 그때도 사진 잘 나오는 우산 하나는 반드시 챙겨야겠지요.
세 곳을 따로따로 가는 관광지로 보기보다 북해안을 따라 하루 동안 걷는 하나의 여정으로 묶어서 가는 게 훨씬 낫습니다. 이동도 어렵지 않고, 걷는 구간도 무리 없어서 체력 걱정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하루가 나중에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으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스먼동, 라오메이, 푸구이자오 등대를 하루에 다 볼 수 있나요?
A. 네, 저도 이 세 곳을 하루에 다녀왔습니다. 단수이 쪽에서 출발하면 버스로 이동하며 스먼동에서 시작해 라오메이, 푸구이자오 순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라오메이에서 등대까지는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어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세 곳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동선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각 장소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쓰더라도 하루 안에 충분합니다.
Q. 라오메이 녹석조 초록색 풍경을 보려면 언제 가야 하나요?
A. 녹석조 위로 해조류가 자라 바위 전체가 초록빛으로 뒤덮이는 시기는 보통 3월에서 5월 사이입니다. 그 시기를 벗어나면 초록이 많지 않지만 화산암 침식으로 만들어진 평행 홈 지형 자체는 계절 상관없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절정 시기가 아니었는데도 바위 모양이 신기해서 충분히 즐겼습니다. 선명한 초록빛 사진을 원한다면 봄철을 노리는 것이 좋습니다.
Q. 타이베이 시내에서 북해안까지 버스로 얼마나 걸리나요?
A. 단수이를 기준으로 862번 또는 863번 버스를 이용하면 스먼동까지 약 4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716번 대만하오싱 관광버스도 북해안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고 있어 선택지가 다양합니다. 버스 배차 간격이 시내보다 길 수 있으니 출발 전에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Q. 비 오는 날 북해안 여행해도 괜찮은가요?
A. 제가 직접 비 오는 날 다녀왔습니다. 스먼동은 데크 산책로와 정자가 있어 비 와도 걷기 불편하지 않았고, 라오메이와 등대 가는 길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해안이라 바람이 강할 때가 많아 우산이 뒤집힐 수 있습니다. 비 예보가 있다면 우비나 바람막이를 챙기는 것이 우산보다 훨씬 실용적입니다.
결론
대만 북해안 스먼동·라오메이·푸구이자오 코스는 타이베이를 이미 한두 번 다녀온 여행자에게 가장 잘 맞는 코스입니다. 꼭 봐야 할 유명 관광지라기보다 바다를 끼고 천천히 걸으며 대만의 다른 면을 보는 하루입니다. 해식 아치, 화산암 침식 지형, 해안 트레킹, 최북단 등대까지 지형 자체가 주는 재미가 있어서 아이와 함께이든, 친구와 함께이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라오메이 녹석조의 절정 초록빛을 보고 싶다면 3~5월을 맞춰 가고, 바람막이나 우비를 하나 챙기는 것을 잊지 마세요. 저는 다음에 간다면 봄철에 다시 한번 같은 코스를 걸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