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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그날 서현곡에 들어간 건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언니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고 저는 그냥 따라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면산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기억이 됐습니다. 오후 내내 걸은 개공령 숲길부터 절벽 협곡인 서현곡, 그리고 정과사의 포골진신상과 영응탑까지, 면산의 진짜 깊이를 몸으로 느낀 하루였습니다.

개공령 숲길과 서현곡, 무서움과 아름다움 사이
오후 일정은 개자추를 기리는 개공령(介公岭)으로 시작됐습니다. 개공령은 춘추시대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를 기념해 면산에 조성된 구역으로, 그와 관련된 유적과 사당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오전에 봤던 절벽과 사찰의 웅장함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계곡물이 흐르고, 크고 작은 폭포가 이어졌습니다.
가는 길에 대나무 몇 개를 묶어 만든 다리를 건넜는데, 지금 사진을 다시 보면 웃음이 납니다. 저도 처음엔 저게 다리 맞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물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걷다 보니 오전에 봤던 면산이 같은 산인가 싶을 만큼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면산이 절벽과 사찰만 있는 곳이 아니라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까지 품고 있다는 걸 이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개공령에 올라가서는 개자추의 의관총(衣冠塚)을 봤습니다. 의관총은 유해 없이 고인의 의복이나 유품을 묻어 만든 상징적 무덤을 말한다고 합니다. 제가 실제로 보면서 '진짜 개자추가 여기 묻혔을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 유해가 확인된 것이 아니라 그를 기리는 의미로 조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하더라고요. 효자이자 충신이었다는 사람의 마지막이 그렇게 끝났다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들으니 마음이 묘하게 무거워졌습니다.
개공사당(介公祠)은 제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거대한 자연 석굴, 즉 천연으로 형성된 바위 동굴 안에 사당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맞은편 회랑에서 바라보니 바위산이 사당 전체를 감싸 안은 모양이 되더군요. 사람이 산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산이 사당을 품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서서 그 전경을 봤을 때 탄성이 나온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현곡(栖贤谷)이 시작됐습니다. 서현곡은 천연 협곡을 따라 내려가는 코스로, 절벽 사이에 설치된 철제 발판과 사다리를 지나야 합니다. 면산 관광 안내에 따르면 수십 개의 발판과 여러 개의 사다리가 이어지며, 아래로는 계곡물과 폭포가 흐르는 구간입니다(출처: 면산 공식 관광안내). 제가 직접 걸어보니 설명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앞을 봐도 절벽, 밑을 봐도 계곡이었습니다. 어떤 구간은 두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옆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두 발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구간이 꽤 됐습니다. 내려가는 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언니를 왜 따라왔나 진심으로 후회했습니다. 그런데 그 좁은 협곡 안에서 양옆으로 솟은 암벽과 발아래 흐르는 계곡을 직접 보니, 멀리서 면산을 바라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었습니다. 무섭고 힘들었는데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경치가 너무 좋았으니까요.
다만 서현곡은 체력과 고소공포증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 철제 발판과 사다리가 이어지는 구간이 많아 체력 소모가 큽니다
- 발아래로 계곡이 보이기 때문에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 어린이나 노약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코스입니다
- 내려가기 시작하면 중간에 되돌아오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과사 포골진신상과 영응탑, 위에서 내려다본 면산
서현곡을 무사히 내려왔을 때 팔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이제 끝인 줄 알았는데 다음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정과사(正果寺)였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은 '얼마나 더 걷는 거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과사에서 본 것들 역시 오히려 그날의 피로를 잊게 만들었습니다.
정과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포골진신상(包骨真身像)이었습니다. 포골진신상이란 고승이나 고도(高道, 도를 높이 쌓은 수행자)가 열반한 뒤 그 유골이나 육신을 보존하고 그 위에 흙으로 형태를 빚어 만든 불상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실제 수행자의 유해를 안에 모신 불상인 셈입니다. 등신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실제로 손과 발, 손톱까지 정말 다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정과사에는 고승 8명과 고도 4명의 포골진신상이 봉안되어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면산 공식 관광안내).
처음에는 조금 무서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마주해 보니 공포스럽다는 느낌보다 경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 산에서 수십 년을 수행하고 생을 마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자연스럽게 말이 줄었습니다. 여행 중에 이런 감정을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뒤 영응탑(灵应塔)에도 올라갔습니다. 영응탑이란 정과사 경내에 세워진 탑으로, 외부는 7층이지만 내부는 9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높이가 약 69m에 달합니다. 탑 안으로 들어가 층층이 올라가며 바깥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면산의 산봉우리와 협곡이 겹겹이 펼쳐졌습니다. 오전에 절벽 아래에서 산을 올려다봤을 때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오히려 면산의 규모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사찰도 잔도도 전부 작아 보였고, 산만 거대했습니다.
정과사를 나와 운봉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절벽 위에 혼자 서 있는 정자를 봤습니다. 적취정(滴翠亭)이었습니다. 적취정은 절벽에 세워진 정자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상당히 아찔한 높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변에는 산밖에 없었습니다. 거대한 암벽 사이에 작은 정자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는데, 위태롭고 외로워 보이면서도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다웠습니다. 화려한 사찰보다 그 작은 정자 하나가 지금도 더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마지막으로 통천운구(通天云衢) 잔도를 걸었습니다. 잔도란 절벽 암벽에 직접 만들어 붙인 좁은 길로, 통천운구 구간은 약 300m에 걸쳐 400여 개의 계단이 지그재그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침이었다면 난간을 붙잡고 무서워했을 텐데, 서현곡을 지나온 뒤라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천천히 사진을 찍으면서 내려올 여유까지 생겼으니까요. 제 경험상 이날 일정의 순서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셈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서현곡 트레킹은 초보자도 할 수 있나요?
A. 제가 직접 걸어보니 초보자에게 선뜻 권하기는 어렵습니다. 철제 발판과 사다리를 손으로 잡고 이동하는 구간이 많고, 발아래로 계곡이 보여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상당히 힘들 수 있습니다. 체력이 충분하고 어느 정도 고도에 익숙한 분이라면 도전할 만합니다.
Q. 정과사 포골진신상이 실제로 무섭지 않나요?
A. 저도 들어가기 전에는 조금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마주하니 무섭다기보다 경건하다는 느낌이 훨씬 강했습니다. 수행자의 유해를 모신 불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오히려 숙연해집니다. 현재 정과사에는 총 12기의 포골진신상이 있습니다.
Q. 개공령까지 이동이 어렵지 않나요?
A. 숲길과 계곡 구간은 비교적 완만합니다. 다만 개공령 상부로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제가 탔을 때는 두 명이 겨우 탈 수 있는 작은 케이블카였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이 구간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Q. 영응탑 내부 관람이 항상 가능한가요?
A. 제가 방문했을 때는 탑 안으로 들어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운영 상황은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방문 당일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올라갈 수 있다면 꼭 올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위에서 바라보는 면산의 산세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결론
하루가 끝날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도 아팠지만, 기분은 이상하게 좋았습니다. 면산은 멀리서 보는 산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산이었습니다. 개공령의 석굴 사당, 서현곡의 철제 발판, 정과사의 포골진신상, 절벽 위 적취정, 그리고 잔도까지. 눈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지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지금 면산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체력이 허락하는 한 서현곡을 코스에 넣는 것을 추천합니다. 여기가 면산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한 길로 내려왔다면 면산을 이렇게 오래 기억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서현곡이 힘들수록 정과사와 잔도에서 보는 풍경이 더 깊게 남는다는 게, 제가 직접 걸어보고 느낀 결론입니다.
참고: 면산 공식 관광안내